MERRIC인
조회수 3864 좋아요 11 댓글 0
슈퍼휴먼을 위한 로봇슈트 기술
공경철 교수(KAIST 기계공학과) / kckong at kaist.ac.kr / 서면 인터뷰
오늘 인터뷰에서 만나 보실 공경철 교수님(KAIST 기계공학부)은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에서 착용형 외골격 로봇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세계랭킹 1위와 3위, 금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석권하였습니다. 센서와 액추에이터에서 통합 로봇 시스템까지 한국의 웨어러블 로봇 기술을 세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총 20개국 53개 팀이 참여한 이번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이 착용한 워크온슈트4는 이전 모델에 비해 연속 보행 속도를 8배 이상 높였고, 착용자가 느끼는 무게감을 현저히 낮춰 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대회에서 소개된 워크온슈트4 뿐만 아니라 공경철 교수님께서는 여러 종류의 웨어러블 로봇슈트를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슈퍼휴먼이 되기 위한 로봇슈트 기술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현재 교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주요 연구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KAIST 기계공학과의 로봇시스템제어(Robotic Systems Control) 연구실은 제어 이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로봇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웨어러블 로봇슈트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이배슬론 대회를 통해 소개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위한 로봇슈트인 워크온슈트(WalkON Suit)와 불완전마비 환자를 보조하기 위한 로봇슈트인 엔젤슈트(Angel Suit)와 엔젤렉스(Angel Legs), 100미터 달리기의 세계기록을 경신하기 위한 플래시슈트(Phlash Suit), 근로자의 작업을 보조하기 위한 로봇슈트와 장애아동을 위한 초소형 로봇슈트에 이르기까지, 대상과 목적이 매우 다양합니다. 이 중 엔젤슈트와 엔젤렉스는 연구실의 스핀오프 기업인 ㈜엔젤로보틱스를 통하여 상용화를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저는 박사과정 중에 제어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자연스럽게 RSC연구실은 제어 이론을 학문적인 기반으로 다양한 응용연구분야를 개척 중입니다.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슈트 연구는 제어의 측면에서는 매우 까다롭습니다. 사람이 개입되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몸도 워낙 다루기 어려운 복잡한 동역학 시스템인데, 거기에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의 동작의도와 뇌와 척수의 동작제어 메커니즘까지 개입되기 시작하니, 제어 문제로서는 더 이상 흥미로울 수 없습니다. 어려우면, 재미있잖아요?





2. 지금까지 연구하신 워크온슈트 시리즈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 연구팀에서 개발한 여러 가지 로봇슈트들 중에서 워크온슈트는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이 착용하기 위한 로봇슈트입니다. 지난 2015년 워크온슈트1이 개발되고 사이배슬론 2016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이후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 워크온슈트 시리즈는 모두 강력한 구동기를 착용자의 관절에 위치시키고 관절의 각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방식으로 걸음을 구현합니다.





워크온슈트2는 로봇시스템의 관점에서는 워크온슈트1과 유사하지만, 스마트글래스가 적용되었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되면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발의 위치를 확인하려 땅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하여 스마트글래스를 통하여 발의 위치와 다른 몇 가지의 중요한 정보를 땅을 보지 않고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워크온슈트2는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인 이용로 박사님께서 올림픽공원에서 불타고 있는 패럴림픽의 성화를 채화하고, 걸어서 봉송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워크온슈트4는 이전 워크온슈트 시리즈와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구동기의 출력부터 매우 강해졌고, 안정적인 자세유지 기능, 발목 제어 기능, 음성 안내 기능 등 이름만 빼놓고는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워크온슈트 시리즈는 모두 지팡이에 있는 버튼을 조작하여 의도를 로봇에 전달하면, 로봇이 상황에 맞는 보행궤적을 자동으로 생성하여 이를 정밀하게 구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은 하지의 움직임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다가, 로봇슈트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인 로봇의 체화(embodiment) 과정을 위해서는 100%의 신뢰도를 갖는 입력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조작버튼을 의도파악의 도구로서 이용합니다.





3. 사람이 가진 물리적 운동능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복합소재, 초경량 모터, 의도파악 센서 등 파생적 기술과 고민 해야할 연구들이 많은데요. 교수님께서 로봇 개발하실 때 가장 염두에 두시는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요?

질문하신 모든 기술들이 필수적이라, 어느 것 하나 빠질 수는 없습니다. 로봇의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이미 탄소섬유를 비롯한 다양한 복합소재가 사용되고 있고, 모터 감속기까지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자 부품 정도를 빼놓고는 대부분 직접 만들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제어를 잘하고 수치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로봇슈트를 입은 사람이 불편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게다가 로봇슈트를 입으면 내 몸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체화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로봇을 입은 사람이 로봇을 입은 몸에 완전히 적응하게 하려면 로봇의 무게와 기능은 물론이고, 착용자의 건강상태와 심리상태까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봇슈트 연구는 상당히 인문학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4. 하반신 마비 장애인들은 웨어러블 로봇을 항상 착용하고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배터리 충전 문제 등 여러 가지 난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어떤 점이 한계점일까요? 극복방안 및 대안은...

기술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배터리 충전 문제도 그렇지만, 일상 속에서 로봇을 사용하려면 우선 로봇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로 얇고 가벼워야 합니다. 아무리 로봇이 편해지더라도 중장거리 이동에 휠체어를 굳이 타지 않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지요. 또 차에 타고 내릴 때에 장애인 스스로 로봇을 다룰 수 있으려면 매우 가벼워야 합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회적 통념입니다. 우선 로봇을 입은 사람을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는 문화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눈 나쁜 사람이 안경 썼다고 신기하게 보지 않듯이, 다리가 불편해서 로봇을 입은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기술개발 초기 단계에는 비용이 비싸기 마련입니다. 매우 비싼 수소전기차를 시장에 보급하기 위하여 정부가 파격적인 지원금을 제공하듯이, 초기에 시장을 열기 위해서는 기술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5. 개발하신 로봇슈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슈트가 있으신가요?

모든 연구개발 결과물이 하나같이 소중합니다만, 워크온슈트는 워낙 다양한 언론을 통해 수 차례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엔젤슈트와 엔젤렉스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워크온슈트와는 달리 엔젤슈트와 엔젤렉스는 불완전마비 환자를 위한 로봇입니다. 불완전마비란 문자 그대로 완전히 마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는 다리 저는 노인, 수술 후 보행재활 환자, 선천성 보행장애 아동, 뇌졸중 환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불완전마비 환자입니다. 엔젤슈트와 엔젤렉스는 이런 분들의 약화된 근력을 보조해 주는 일종의 보조장치입니다.





6. 로봇슈트는 상용화가 되기 위해서는 가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너무 비싸면 상용화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먼 미래에 1인 1로봇슈트하고 싶은데요. 적당한 가격이 있을까요?

모든 기술이 개발 초기에는 비싸고,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은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적정가격을 맞추기 위하여 가격만을 고려한 기술을 개발하면 시장에서 외면하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고가의 기술만 고집하면 시장을 개척할 수가 없지요. 이런 과정에서 정책적인 결정이 필요하고, 정책적으로 풀어낼 수 없다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분들부터 공략하는 단계적인 전파 과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웨어러블 로봇슈트가 개호보험의 적용대상으로 선정이 되어서 구매비용의 대부분을 정부지원으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보행장애는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도이지요. 사실 사회의 고령화가 가속화될수록 사람들을 보행장애로부터 해방시켜야 소비계층과 경제활동계층이 다시 두터워지면서 경제가 살아나기 때문에, 반드시 정부 차원에서도 손해보는 계산은 아닙니다.


7. 착용자의 긴장정도나 지면의 상태와 같은 외부 요인을 지능적으로 관측하고 제어한다는 데요. 인식 및 오차 범위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웨어러블 로봇슈트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의해 제어됩니다. 절대로 사람보다 더 많은 지능을 구사하면 안 됩니다. 착용한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체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웨어러블 로봇슈트는 착용한 사람이 정확하게 부족한 부분을 아주 정교하게 채워줘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로봇슈트의 사용자의 특성이나 사용환경, 용도에 따라서 지능적으로 관측해야 할 대상이 정해지고, 사람에게 맡겨야 할 대상도 정해집니다. 가령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위한 로봇슈트인 워크온슈트 시리즈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잃어버린 기능, 즉 특정 부위 이하의 운동능력과 감지능력을 모두 수행해야 합니다. 반대로 엔젤슈트는 착용자의 근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동작에서는 보조력이나 저항력을 전혀 발생하지 않고, 힘든 동작을 할 때 정확히 부족한 만큼만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로봇슈트라도 착용한 사람마다 다르고, 게다가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집니다.


8. 장애인뿐만 아니라 웨어러블 로봇슈트는 산업현장에서도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LG전자가 개발한 LG클로이 수트봇, 현대자동차에서 개발한 벡스(VEX)까지 이런 웨어러블 로봇슈트를 입고 작업을 하면 어떤 점에서 유용할까요?

근로자의 작업을 보조하고 신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보조도구는 오래 전부터 개발되어 왔습니다. 산업재해로 인한 피해를 감소시키기 위하여 많은 공장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이러한 근로자 작업 지원용 웨어러블 슈트를 착용하면 어깨나 팔꿈치 등의 약한 부위의 부상을 줄여줄 수 있다는 보고가 많이 있습니다.


9.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에 참가했던 다른 로봇들 중 눈여겨 볼 로봇이 있을까요?

비록 순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원더크래프트(Wandercraft) 팀의 로봇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로봇은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의 보행을 구현하면서도 착용자가 지팡이를 짚지 않아도 됩니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로봇을 착용할 때 지팡이가 늘 불편한데, 이 점을 해결한 로봇이지요.





물론, 로봇 자체의 무게만 80kg이고 아직 연구실 외부에서 사용하기에는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지팡이를 짚지 않도록 하는 노력만큼은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10.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필수 메카트로닉스 기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로봇만을 위한 기술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들이 많지요. 모터 등의 구동기 기술, 센서 기술, 제어 기술, 설계 기술, 가공 및 제작 기술, 소재 기술부터 제품 디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다양한 기술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위한 독특하고 필수적인 기술은 아무래도, 인간과 로봇이 서로 소통하기 위한 기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봇이 인간과 접촉하는 것을 감지하기 위한 로봇 피부, 인간의 감성을 파악하기 위한 인공지능 기술 등, 인간으로 하여금 로봇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도록 하는 다양한 형태의 소통을 위한 기술이 중요하겠습니다.


11. 일본 유피알(UPR Corporation)에서 만든 간호활동을 지원하는 패시브 타입 재킷이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가격이 28만원정도 굉장히 저렴한데요. 지금까지 1만 벌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무거운 짐이나 환자를 옮기거나 서서 일할 때 몸의 움직임을 지원해준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국내기업과 국외기업이 어떤 식으로 연구 및  상용화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패시브 타입의 슈트는 이미 산업현장에서 널리 적용된지 오래입니다. 간단한 구조물에 고무밴드나 스프링을 이용해 힘을 보조하는 방식이니 가격이 비쌀 이유도 없지요.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슈트는 정해진 반복 동작을 보조하기 위해 설계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모터 같은 구동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착용자의 의도를 인지해서 액티브 방식으로 보조하는 로봇슈트의 경우에는 미국의 Raytheon社에서 만든 XOS 시리즈가 유명하고, Ekso Bionics社의 다양한 로봇슈트들이 상용화되었습니다. SuitX社의 모듈형 로봇슈트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근전도를 측정해서 로봇을 체화시키는 일본 Cyberdyne社의 HAL 로봇도 매우 유명합니다.

국내에서는 제 창업기업인 엔젤로보틱스의 엔젤렉스 M 시리즈가 지난 9월에 상용화가 완료되어 일부 병원에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방위산업체로 유명한 LIG넥스원이 근로자 작업지원용 패시브 슈트를 상용화하여 인천공항 등 여러 작업현장에 로봇을 보급한 바 있습니다. 이외에도 CES를 통해 소개된 삼성전자의 GEMS 등 여러 기업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로봇슈트를 개발하여 상용화 하고 있습니다.


12. 웨어러블 로봇슈트의 미래, 어떻게 전망하고 계시나요?

흔히 말하는 4차산업혁명은 개인맞춤형 제품의 시대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전에는 냉장고, TV와 같은 가전제품들이 인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설치되어 자기만의 기능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모든 가전기기들이 점점 더 인간에게 물리적으로, 감성적으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의 감정상태를 인지하고 적합한 음악을 추천하는가 하면, 방의 조명을 조절하고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하여 때로는 바닷가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때로는 산속에 있는 것처럼 환경을 모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전기기들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트렌드 속에, 웨어러블 로봇슈트는 사람을 완전히 물리적으로 감싸고 있는 가전기기입니다. 사람에게 딱 달라붙어 사람의 모든 동작을 측정하고, 또 계산된 물리적인 힘을 사람의 몸에 제공하는, 그야말로 가장 밀접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장치인 셈이지요.

따라서 로봇슈트의 미래는 인간의 활동 그 자체입니다. 장애인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로봇슈트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이제 등산을 보조하는 로봇슈트, 골프 같은 레저를 보조하는 로봇슈트, 집에서 다이어트 운동을 보조하는 로봇슈트 등,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활동과 관련된 로봇슈트들이 세계 곳곳에서 개발되고 있습니다.

로봇슈트는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분석해서 연구 개발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다른 기술들과 차별성을 갖습니다. 로봇슈트 기술의 개발동기에서부터 검증까지 사람이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에 관심을 갖는 한, 로봇슈트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할 것입니다.


13. 프랑스 대학에서 5,000만원의 국제 기술이전을 받아 연구용 하지보조 로봇을 한 대 만드셨다고 하는데요. 그 일화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교수로 돌아와 웨어러블 로봇슈트가 아닌 다른 연구를 해보려고 열심히 시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웨어러블 로봇슈트는 재활의학, 인체공학, 산업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젊은 신임교수가 관심과 열정만으로 섣불리 달려들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프랑스의 파리12대학의 Samer Mohammed 교수가 제가 박사과정 중에 썼던 논문을 이용해서 웨어러블 로봇슈트를 제작하고 있는데 너무 어렵다며 차라리 저에게 돈을 줄 테니 한 대만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기꺼이 그러자고 했는데, 다시 웨어러블 로봇슈트를 만들고 있노라니 며칠 밤을 새도 피곤하지도 않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이걸 계속 연구해야겠구나 하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14. 2014년 첫 창업이후 LG전자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고 엔젤로보틱스 대표이신데요. 엔젤로보틱스의 기업가치는 400억에 이르며 LG전자의 공동연구개발비를 제외하고도 지금까지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로봇 창업하신 분들은 투자유치가 어려워 대출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합니다. 기업과 교육을 병행해오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어떤 점이었으며, 어떻게 해결해 오셨는지 알려주세요.

일단, 기업과 교육은 많은 측면에서 정반대의 특성을 갖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업을 통해 사업을 한다는 것은 제가 가진 기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이 따라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신기한 기능보다는 안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과 하는 연구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퍼트려야 하고, 남이 잘 따라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야 하며, 안전보다는 신기한 기능을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가끔은 좌뇌와 우뇌가 갈라지는 듯한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기업가로서의 입장과 교육자로서의 입장이 서로 충돌할 때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때면 올바른 생각이 무엇인지, 이런 선택을 하는 다른 사람을 보게 되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합니다. 그럼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것 같아요.


15. 후배들에게 창업에 대한 조언해주신다면.

창업은 공학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경제적으로만 보더라도, 대기업에 취직해서 수십년동안 벌어 겨우 모을 수 있는 돈의 수십, 수백배 이상을 벌어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확률적으로 드물기도 하고, 그렇게 성공한 기업도 반드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통과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소수의 소위 대박이 터진 결과만 놓고 창업의 가치를 논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런데 기업을 세우고 일으켜서 얻을 수 있는 보상 중에 생각보다 돈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사업이란 돈을 버는 일이란 뜻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과 의지로 내가 속한 사회를 바꿔 나가는 일을 뜻합니다. 저는 제가 가진 로봇기술로 누구나 모두의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창업을 했습니다. 제가 연구했던 기술로 장애인이 일어나 걷고, 기존의 의학기술로는 더는 호전시키지 못했던 보행장애 아이들의 보행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하고, 누군가의 눈물과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창업하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논문 쓰면서 느꼈던 만족감에 비하여 상용화된 제품이 실제 사용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보람과 만족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저를 닮은 기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참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창업을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그래도 섣불리 하지는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창업은 현실입니다. 마치 아이를 낳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아이가 아빠 엄마를 닮아 예쁘게 무럭무럭 알아서 자라나고, 씩씩하게 스스로 성장하여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부도 잘 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서 어엿한 성인이 되는 것을 상상하게 되지만, 실제로 아이를 낳고 모두가 느끼듯 부모가 되는 길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창업이란 게 딱 그렇습니다. 창업은 자기를 닮은 기업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기술이 좋다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사업적 수완이 좋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교수님들께서 창업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고 도전하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교수님들께서는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학생들이라는 가족들과 연구실이라는 가정을 꾸리신 가장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하고 기술의 상용화 비율이 현저히 낮아서 능력 있는 가장들에게 가정을 하나 더 꾸릴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제도적으로 허락하는 것을 넘어서, 때로는 여러 가지 지원금과 각종 인센티브, 높은 평가점수까지 더해서 두 번째 가정을 꾸릴 것을 추천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도적으로 허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교수님들의 창업은 엄연히 두 번째 가정을 꾸리시는 것입니다. 제도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게다가 학교라는 사회는 우리 연구실 가족 외에도 수많은 가정들이 함께 조화롭게 원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곳이지만, 창업 기업은 그 회사가 사회 전체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든 돌아갈 가정이 있지만, 그 사회에 들어온 많은 직원들은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위화감이 생기기 마련이고, 기업가로서 교수님들께서는 직원들이 이런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회사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게다가 본업이 교수라고 철석같이 믿는 교수님들께서 기술에 대한 자존심을 거두고 창업에 대한 절실함을 투자자들의 마음에 전달하고 투자를 이끌어 내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회사(會社)와 사회(社會)는 정확히 똑같은 한자를 앞뒤만 바꾼 것입니다. 회사는 창업자가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체계 그대로 사회적 문화가 생겨나게 되고, 창업자의 윤리의식은 그 회사의 규정이 되며, 창업자가 바라보는 인간의 관계는 그 회사의 인사제도가 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창업자가 어떤 고도한 기술을 갖고 있는지는 그렇게 크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창업은 정말 멋지고 고귀한 일입니다. 나를 닮은 사회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를 빼닮은 사회로부터 반사되어 보이는 나라는 사람의 면면을 그대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이런 과정에 자존심 상하거나 힘들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창업을 적극 추천합니다. 창업을 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보람과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16. 이런 연구에 힘입어 앞으로 연구 계획 중인 연구나 또 다른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인간능력 강화 기술도 연구 중에 있습니다. 가령, 우사인 볼트의 100미터 달리기 기록은 앞으로는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데, 일반인도 간편하게 착용하면 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하는 로봇슈트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슈퍼휴먼을 탄생시키기 위한 기술입니다.


17. 앞으로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후학(대학원생들)에게 연구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신다면.

누구나 한창 젊을 때에는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고, 처음으로 자기 이름 달고 나가는 논문을 제출하는 것만으로 재미있고, 학술대회에서 자기 이름이 큼지막하게 출력된 명찰을 가슴에 다는 것만으로 재미있고, 카페에서 연구실 선후배와 조잘대며 냅킨에 어설프게 적는 수식도 재미있고, 며칠 밤을 새도 연구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재미가 느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묘미를 찾기 시작합니다. 남들은 도저히 안 된다고 하는 것을 혼자만의 생각으로 풀어냈을 때의 짜릿한 묘미에 취하고, 고생해서 만들어 낸 기술이 제품화되어 사회에 나가는 묘미를 만끽합니다.

드디어 궤도에 오르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나아가 내 존재가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남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미 충분히 익숙해 지고 나면, 재미나 묘미는 식상해지기 마련입니다. 자기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일에서 행복을 찾기도 어려워집니다.

열심히 연구해서 개발한 기술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임팩트 팩터가 엄청나게 높은 논문을 수백 편 출판하더라도, 이런 기술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삐뚤빼뚤 적은 따듯한 손편지 한 장이 더욱 의미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더욱 쉽게 움직입니다.


 
인쇄 Facebook Twitter 스크랩

전체댓글 0

[로그인]

댓글 입력란
프로필 이미지
0/5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