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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잔을 들고 걸을 때 커피를 쏟는 이유
이정진 연구원 (삼성SDI)
커피,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카페에서 커피를 들고 걸어갈 때 혹은 커피를 마시면서 걸을 때 컵이 흔들리면서 안에 든 커피를 쏟은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저는 아무리 조심히 걸어도 커피를 쏟는 경우가 종종 생기더군요. 스타벅스에서 컵을 쟁반 위에 올려두고 살금살금 천천히 걷다가 너무 답답해서 살짝 빠르게 걸으면 어김없이 커피가 흘러넘치곤 합니다.


왜 커피는 흘러넘칠까요? 너무 많이 담아서?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커피를 안 쏟으면서 커피잔을 들고 걸을 수 있을까요?


커피가 잔에서 출렁거리는 현상은 슬로싱(sloshing)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슬로싱은 관성의 영향으로 인해 용기(container) 안의 액체(정확히는 액체 표면)가 흔들거리는 현상*을 뜻합니다 (Fig 2).


슬로싱은 주기적으로 진동하는 특성이 있으며, 이는 액체의 밀도와 표면장력, 액체의 부피, 컵의 모양, 중력가속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특정 크기의 용기에 특정 높이만큼 차 있는 액체의 슬로싱은 마치 고체처럼 고유한 진동수를 가집니다. 이를 고유진동수(natural frequency)라 하는데,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1].





Fig 3으로부터 반지름이 약 4 cm인 컵에 담긴 높이 9.5 cm의 액체는 고유진동수가 약 4 Hz입니다. 물론 컵의 모양과 커피의 양에 따라 값이 변하지만, 일반적으로 커피잔의 커피는 약 4 Hz에 가까운 고유진동수를 가진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좀 더 전문적인 표현으로는 자유표면(free surface)을 가진 액체가 용기 내에서 크게 진동하는 현상이다. 유체-구조 상호작용(fluid-structure interaction)이라고 볼 수 있다.

** 고유진동수 식은 마찰이 없고(frictionless) 비압축성인(incompressible) 유체라는 가정 하에 표현할 수 있다.


고유진동수는 물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에 용기 안의 액체가 고유진동수와 같은 진동수의 진동을 받게 된다면 그 액체는 다른 진동에 비해 훨씬 격하게 진동하게 됩니다. 즉, 외부 진동의 진동수가 액체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할 때 액체의 진동은 증폭되며 이를 공진(resonance) 또는 공명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4 Hz의 고유진동수를 가지는 커피에 1초에 1번 떠는 진동을 가해주면 잔잔한 슬로싱이 발생하지만, 1초에 4번 떠는 진동을 가해준다면 커피의 슬로싱이 훨씬 커지게 됩니다. Fig 4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진동수의 진동을 가진해도 고유진동수가 비슷한 액체만이 공진이 일어납니다.


한편, Fig 5처럼 사람이 커피잔을 들고 걸어가면 걸음걸이에 의해 커피잔으로 진동이 가해집니다. 사람의 걸음걸이는 몸의 주기적인 동작입니다. 한 발짝씩 걸어갈 때 우리 몸은 위아래로 흔들리고, 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땅으로부터 받는 충격은 온몸으로 전해집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팔과 손에 든 컵으로 전달됨에 따라 컵은 다양한 파장 및 주파수를 가진 파동이 혼합된 진동을 일으킵니다. 이를 강제 조화 진동(forced harmonic oscillation)이라고 합니다 (Fig 6).

Fig 6은 사람이 걸을 때 컵의 진동에 대한 진동수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먼저 위아래 방향의 진동수 스펙트럼을 보면 약 1.7 Hz의 진동이 가장 지배적인데, 이는 걸음걸이의 위아래 움직임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위아래 동작이 팔과 손의 움직임으로 인해 컵의 앞뒤 움직임을 가진 시킨다는 점입니다. 앞뒤 방향의 진동수 스펙트럼에서 2차 고조파 진동수(second harmonic frequency)는 걸음 진동수의 약 2배에 해당하는 3.5-4 Hz 값을 가집니다. 이는 위에서 계산한 커피의 고유진동수와 비슷합니다. 이렇게 비슷한 진동수를 가지는 진동이 커피에 가해지면 커피의 움직임(슬로싱)은 증폭되어 어느 순간 컵보다 표면이 높아져 흘러넘치는 것이죠.

정리하자면 걸을 때 커피를 쏟는 현상은 생체역학, 유체역학 그리고 동역학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반대로 커피 슬로싱의 진동을 줄이는 것은 곧 공명 현상을 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걸을 때 컵에 가해지는 진동을 커피의 고유진동수와 다르게 주면 커피를 덜 쏟을 수 있습니다. 논문[2]에서는 다음의 방법들을 제안하였습니다.



뒤로 걸으면 앞으로 걸을 때와 걸음 동작이 바뀌게 되므로 걸음에 의한 진동도 바뀌게 됩니다. Fig 7에서 뒤로 걸을 때의 진동수 스펙트럼(Fig 7 중간)과 앞으로 걸을 때의 진동수 스펙트럼(Fig 7 위)을 비교한 것입니다. 걸음걸이의 위아래 움직임에 따른 진동, 즉 z방향의 약 2 Hz 진동은 동일하나 앞뒤 움직임(y방향)에 따른 진동수(3.5-4 Hz)는 확연히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Fig 7 아래와 같이 손가락으로 컵의 위쪽을 잡으면 컵 또는 손잡이를 잡을 때보다 손목 관절의 움직임이 추가되어 자유도(degree of freedom)가 증가합니다. 자유도가 증가하면 컵이 움직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증가해 컵이 받는 진동의 진동수가 바뀔 수 있습니다. Fig 7의 진동수 스펙트럼에서 보듯이 컵의 위쪽을 잡고 걸으면 앞뒤 움직임(y방향)에 따른 진동수(3.5-4 Hz)가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커피 위에 떠 있는 거품은 커피 슬로싱 현상을 완화해 줍니다. 논문[4]에 따르면 컵의 벽면에 가까운 기포들로부터 점성에 의한 에너지 소산(energy dissipation)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은 컵에 뚜껑을 덮거나 커피 양보다 더 큰 컵에 담는 것일 겁니다.



슬로싱 현상은 비단 컵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액체를 담은 용기가 움직일 때는 슬로싱이 항상 발생합니다. 문제는 슬로싱으로 인해 액체를 담은 용기에 예상치 못한 힘 또는 모멘트(moment)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내력(internal force)이라고도 볼 수 있는 슬로싱에 의한 힘은 액체의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한다면 파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컵 안의 커피가 슬로싱으로 인해 컵에 가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서 우리가 느끼긴 어렵지만, 커피가 드럼통 부피만큼 있다면 그 힘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배가 LNG(liquefied natural gas) 연료를 싣고 이동할 때 탱크 안에서 LNG의 슬로싱이 발생합니다. 만일 LNG의 슬로싱이 공진하여 큰 슬로싱이 발생하면 강한 진동과 충격 때문에 탱크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슬로싱을 억제하기 위한 기술이 많이 개발되었고, 그중 하나로 탱크에 배플(baffle)을 설치하여 슬로싱 현상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Fig 8).

액체 연료를 쓰는 로켓 또한 슬로싱에 치명적입니다. 고도의 제어 기술을 필요로 하는 로켓에 연료의 슬로싱이 예상치 못한 모멘트를 주어 궤도를 이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슬로싱 억제를 위해 로켓 탱크에도 배플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슬로싱 현상은 1960년대 탄도 미사일 또는 우주선 제어와 관련해서 처음으로 연구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NASA 자료[5]를 보면 우주선과 관련된 슬로싱 연구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메이어(Mayer, H. C.)와 크레체트니코프(Krechetnikov, R.)는 2012년 커피 슬로싱과 관련된 연구[1]로 이그노벨 유체역학상을 수상하였다.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간하는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에서 주는 상으로서 ‘사람들을 웃긴 뒤 한 번쯤 생각하게끔 만드는’ 괴짜 연구를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2016년, 당시 민사고 학생이었던 한지원은 2012년 메이어와 크레체트니코프가 연구했던 같은 현상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분석하여 논문[2]을 출판하였고, 2017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학생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갤럭시S4로 컵의 가속도를 측정하는 기발한 방법을 통해 양질의 연구 결과를 냈다. 연구의 논리적인 전개와 일목요연한 설명, 그리고 전문적인 분석은 필자가 감탄할 정도로 훌륭했다. 관심이 있는 연구자는 한번 찾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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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5
나이와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도 들었는데.ㅎㅎ 보통 커피를 쏟을때는 커피 여러잔을 트레이에 담아서 한꺼번에 옮길때 많이 일어나죠. 그것도 연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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