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와인 관련 가장 유명한 영화 대사는 바로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이지 않을까 한다. 이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남녀 주인공이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 남주인공이 던지는 대사로, 원문은 ’here’s looking you kid’ 이다. 우수한 번역 사례로도 꼽히는 이 대사는 현재에도 많은 예능 등에서 패러디 되고 있다.

그대의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 대신, 와인의 눈물 (Tears of Wine) 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번 칼럼에서는 와인의 눈물과 그 현상을 설명하는 마랑고니 효과 (Marangoni effect)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글라스에 와인을 담고 글라스를 원을 그리듯 돌린다. 이를 스월링(Swirling) 이라고 하는데, 와인에 담긴 향을 발산시켜 코에서 풍미를 잘 맡게 하기 위함이 1차 목적이다.


스월링 한 글라스를 유심히 보면, Figure 1과 같이 와인이 글라스 안쪽 벽면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균일하게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눈물을 똑 똑 흘리듯 떨어진다. 이를 와인의 눈물, 혹은 와인의 다리(leg), 와인의 커튼 등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모든 와인에서 이러한 와인의 눈물이 보이는 것은 아니며, 일부 와인에서 와인의 눈물 현상이 나타나며, 특정한 품종, 지역 등의 와인에서 와인의 눈물 현상이 더 잘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와인의 눈물 현상을 최초로 과학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열역학의 거장 켈빈(Kelvin)의 형인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 1822-1892)이다. 제임스 톰슨은 고체, 액체, 기체의 상이 공존하는 삼중점(Triple Point) 개념을 제안한 사람이며, 또한 토크(Torque)를 제안한 사람이다.


영국인인 톰슨은 1855년 ’On certain curious motions observable on the surfaces of wine and other alcoholic liquours, Philosophical Magazine, 10 : 330-333 논문에서 ’흥미로운 유체의 움직임’이라고 이 현상에 대해 표현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1855년은 프랑스가 세계 제 1회 만국박람회를 파리에서 개최하면서, 당시 프랑스 및 영국에서 인기가 높은 최고가 와인들이었던 보르도 지역의 61개의 와인들을 그랑 크뤼 (Grand Cru, 매우 우수한 구역이라는 의미)로 지정하고 이를 다시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등급제 (Classe)로 분류한 역사적인 해였다. 소비자들은 그랑 크뤼가 붙은 와인은 검증된 우수한 품질의 와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고, 또한 등급에 따라 와인을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되어 그랑크뤼 등급제는 보르도 와인이 프리미엄 상품으로 유행이 되는 것에 큰 역할을 하였다.


1855년 당시 그랑 크뤼 로 지정된 61개의 보르도 와이너리는 16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동일한 등급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와인 라벨에는 ’Grand Cru Classe en 1855’ (1855년에 정해진 최고 와인 등급) 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아마도 제임스 톰슨도 보르도 와인을 즐기면서 이 현상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한 것은 아닐까?
제임스 톰슨이 보르도 와인이 아니라 부르고뉴 와인을 즐겼다면 이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와인의 눈물 현상은 1865년 이탈리아 Pavia 대학의 카를로 마랑고니 (Carlo Marangoni)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물리적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를 그의 이름을 따서 마랑고니 효과라고 부른다.


마랑고니 효과는 표면 장력(Surface Tension)의 변화(gradient)에 따라 유체가 표면장력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효과로 표면장력의 변화는 유체의 농도,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와인잔을 스월링하게 되면, Figure 3과 같이 글라스의 안쪽 가장자리 벽면에 와인막이 얇게 형성된다. 와인은 물과 알코올의 혼합물로 벽면에서 빠르게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농도 차이에 의해 벽면에는 표면장력이 높아지게 되고, 와인잔의 중심부는 표면장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이에 와인이 중앙부에서 글라스 벽면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벽면을 타고 올라가게 되는데, 이 후 중력에 의해 와인이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이 때도 역시 표면장력에 의해 물방울 모양으로 떨어지게 되어 마치 눈물처럼 보이게 되는 원리이다.


마랑고니 효과는 Figure 4와 같이 커피 얼룩에서도 동일한 현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종이나 섬유에 묻은 커피가 바깥쪽부터 증발하면서 표면장력의 차이에 의해 커피 방울 속의 유체가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때 커피 방울에 포함된 작은 커피 알갱이가 바깥쪽으로 이동한 뒤 물이 모두 증발하고 남아, 커피 얼룩의 테두리 부분이 중앙 부위보다 진한 색을 띄는 형태로 나타난다.


마랑고니가 학위를 받은 파비아 대학은 이태리 북부 밀라노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태리 북부는 ’이태리 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바롤로 (Barolo) 가 생산되는 지역이다. 파비아 대학은 바롤로 와인이 생산되는 곳에서 차로 불과 1시간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제임스 톰슨과 마찬가지로 마랑고니 또한 해당 지역의 대표 와인인 바롤로 와인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 마랑고니가 이태리 북부가 아니라 중부의 피렌체 등과 같은 곳에서 자랐다면 마랑고니 효과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다.
제임스 톰슨의 보르도 와인과 같이 마랑고니의 바롤로 와인에는 어떠한 비밀이 있는 것인가?


마랑고니 효과에 의한 와인의 눈물은 모든 와인에서 잘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알코올 증발에 따른 농도 차이에 의한 표면 장력 차이에 의해 나타나므로, 충분한 농도 변화를 나타낼 수 있는, 높은 알코올 도수의 와인에서 이 효과가 잘 나타난다.

상온의 일반적인 와인글라스에서 와인의 눈물을 잘 관찰하려면, 알코올 도수 14 %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 13.5 % 와인에서도 관찰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14 %로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보통의 화이트 와인은 11-13 % 수준의 알코올 도수를 가지며, 가벼운 레드 와인은 12-13 % 수준, 중간 정도의 레드 와인은 13-13.5 % 수준, 무거운 레드 와인은 14-15 % 수준의 알코올 도수를 보인다.


와인의 알코올 도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포도의 품종’, ’재배지의 기후’, ’와인의 양조법’ 등이 있는데, 포도의 품종 영향이 가장 크며 뚜렷하다. 포도 품종마다 수확할 때 포도가 가지는 당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래 Figure 5에서 알 수 있듯이, 포도의 당도(포도당의 농도)가 높으면 발효가 끝났을 때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품종인 카베르네소비뇽 (Cabernet Sauvignon)으로 만든 와인은 13.5 ~ 14.5 %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보인다. 보통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은 탄닌도 높아 입안에서 무거운 바디감을 보인다.


한편, 피노누아 (Pinot Noir) 품종은 주로 12 ~ 13.5 %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보이는데, 입안에서는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이 드는 바디감을 보인다. 물론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지역, 양조법 등에 따라서 기술한 범위의 알코올 도수를 넘어서는 와인도 존재한다.


위에서 합리적 의심(?)으로 필자가 거론한 제임스 톰슨의 보르도 와인은 카베르네소비뇽 위주로 만들며 13.5 ~ 14 % 수준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다. 또한 마랑고니의 바롤로 와인은 네비올로 (Nebbiolo) 라는 품종의 포도로 만들며 14 ~ 14.5 % 수준의 알코올 도수를 보통 가진다. 높은 알코올 도수를 가지는 와인을 즐겼기 때문에 와인의 눈물을 자주 관찰할 수 있었고 결국 이러한 마랑고니 효과에 누구보다 빠르게 접근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제임스 톰슨이 피노누아 포도로 만드는 부르고뉴 와인 (주로 12 ~ 13.5 %)을 즐겼다면, 마랑고니가 산지오베제 포도로 만드는 토스카나 와인 (주로 13 ~ 13.5 %)을 즐겼다면 마랑고니 효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붙은 효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부르고뉴, 토스카나 와인에서도 14 % 넘는 와인들이 존재한다. 또한 점점 사람들이 높은 도수의 풀바디 스타일의 와인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인해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최근에는 전체적으로 상향되었다.)


와인의 눈물은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잘 나타난다. 따라서 와인의 눈물이 가장 잘 보이는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은 와인이다. 이를 이용하여 전문 소믈리에들은 블라인드 테이스팅 (Blind Tasting)에서 와인을 마시지 않고도 빛깔, 와인의 눈물등을 보고서 특정 품종들을 유추해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포도의 단맛이 없는 드라이한 와인이란, 포도가 가진 당분, 즉 포도당이 모두 알코올로 변환된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은 즉, 포도가 가진 당분의 농도가 높은 와인인데, 포도 품종 중에서는 호주의 쉬라즈 (Shiraz) 품종이 당분의 함량이 높아 고 알코올 도수의 와인이 생산된다. 호주 쉬라즈 와인들은 주로 14-15 %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보이며 최근에는 16 % 와인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나 남미에서 재배하는 카베르네소비뇽은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카베르네소비뇽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데, 이는 연중 햇빛을 많이 받는 기후로 인해 포도에 많은 당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카베르네소비뇽 와인에서도 15 % 이상의 알코올 도수를 가지는 와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포도나무에 열리는 포도 열매의 개수를 극소로 줄여, 매우 응축된 포도를 수확하여 만든 극소량의 와인을 컬트 (cult) 와인 혹은 가라지 (garage, 개인 차고에서 극소량만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의미) 와인으로 부르는데, 이러한 와인들도 같은 품종의 타 일반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다.


포도 자체의 발효로 얻을 수 있는 최고 알코올 도수는 현재 16 % 정도이며, 더 높은 알코올 도수를 가지는 와인은 다른 방법으로 만드는데, 대표적인 와인이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이다.


포트 와인은 포도의 발효 과정 중에 35 ~ 60 % 정도의 고 알코올 도수를 가진 증류주 계열의 브랜디를 첨가하여, 발효 중인 효모의 활동을 중지시켜 19 ~ 20 %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나타내면서, 발효가 중지되어 포도의 잔여 당분이 남아있어 단맛이 나는 와인을 말한다.


이를 주정 강화 (Portified) 와인이라고 하며,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이 가장 유명하며, 스페인의 셰리, 프랑스의 뱅 뒤 나뛰렐(VDN) 등 다양한 주정 강화 와인들이 있다. 주정 강화 와인들은 단 맛이 나기 때문에 보통 디저트 와인으로 디저트와 함께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와인 중에서 이러한 주정 강화 와인들의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기 때문에, 와인의 눈물은 주정 강화 와인에서 가장 잘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와인의 눈물에 담겨져 있는 유체역학적 현상-마랑고니 효과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이야기는 이공계 사람들과 와인을 마실 때에만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랑고니 효과’ 보다는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가 더 낫지 않을까?